2012. 6. 20. 01:40 여행기
아프리카 어느 마을?
아침 5시 30분.
바닥이 눅눅한 움집같은 집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끈적거리고 간지러운게 꼭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머리너머로 손을 뻗어 배낭이 잘 있는지 살핀다. 잘있구나.
이 나라는 물이 귀해 양치할 물도 제대로 구할 수 없다. 겨우 구한 물 한컵에 3분의 1로 양치를 하고 나머지 3분의 1로 얼굴을 닦고 나머지 3분의 1로 목을 축였다. 아 씨..왜 이렇게 더운거야..
움집을 기어서 나왔더니 벌써부터 햇살이 따가운게 한 낮이다. 어제도 이렇게 땡볕을 걸어 걸어 이 마을까지 찾아왔는데 지도를 보니 앞으로 두 마을을 더 걸어야 버스 타는 곳이 나올 것 같다. 바닥을 보니 조그만 짱돌 하나가 있어서 손을 뻗어 주웠다. 아 뜨거...젠장..
언제부터 해가 뜬거야..
뒤에서 이상한 낌새가 있어서 쳐다보니 나무 뒤에 숨어서 이 동네 꼬마아이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웃고있다. 그 중 한 꼬마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발걸음이 씩씩한 것이 이 녀석이 분명 이 무리의 대장이렸다.
"니나 마야꿀라마스파하~"
뭔소리야 임마 -_-;
"니나 마야꿀라마스파하~!"
이녀석이 도통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난 그냥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이 녀석도 나를 보며 따라 웃는 것 아닌가. 하얀 이가 햇볕에 비쳐 더 하얗게 보였다.
나에세 손을 내밀었다.
"마흐시라"
오호. 이녀석 이름이 마흐시라인가? 대충 생각했다. 벌써 1년이 넘게 여행을 해 온 나에게 이정도 눈치는 예삿일이라..
"제이디"
나도 손을 내밀어 내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녀석은 내 손을 탁 치고 웃으며 도망갔다. 이 놈... ㅡㅡ
새로운 마을에 오면 으레 어린이들은 외지인을 보고 신기함 다음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다. 페루에서는 내 작은 가방을 갖고 도망가는 바람에 소매치기로 오해를 하기도 했었다. 실은 친구처럼 장난친 거지만.
어쨋든 나도 그녀석을 웃으며 쫓아가는 척을 했다. 아침부터 피곤해 죽겠는데 말야..-_- 30분 정도 놀다보면 으레 녀석들의 엄마들이 찾으러 나와 밥을 먹으라 한다. 그러면 거기서 약간 뻘쭘한 표정을 지으면 되고 그럼 녀석들은 엄마한테 달려가서 모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럼 엄마는 아이를 한번 보고 나를 한번 보고 난 다음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이윽고 같이 밥을 먹자는 말을 한다. 젠장..이런 방식으로 6개월을 살았다. 똑같은 패턴. 하지만 다른 분위기. 매번 이럴 때 마다 속으로 제발 제발을 외친다. 3달 전 나미비아에서는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하다고 안줘서 비상시 먹을라고 쟁여둔 초코바로 떼웠었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으리라.. 난 최대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거절했다. 당연히 한번은 거절해 줘야 한다. 한번에 가면 내가 밥만 축내는 녀석으로 보일꺼 아냐;;
마지 못해 밥을 같이 먹는다. 밀가루 반죽을 구워 만든 빵 같은 거에 풀을 싸서 먹고 있다.-_- 이게 모지..라고 생각한 순간 나에게는 특별한 손님이라고 빨간 열매 으깬거를 넣어줬다. 먹었다. 불났다. 이 죽일 놈의 빨간 열매..고추보다 훨씬 매운 어떤거다. 내가 먹고서 얼굴이 빨개져서 켁켁 거리자 같이 밥먹던 사람들이 죄다 킥킥 거리며 웃고 있다. 자기들은 그 빨간 열매를 연신 빵에 바르고 아무렇게 않게 먹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듯 내가 보는 앞에서 자연스럽게 빵을 풀을 싸서 먹는다.
어쨋든 아침을 떼웠다. 여기 이 마을도 당연히 화장실이란 개념이 없다. 이 마을을 알게 된건 나흘 전, 볼리비아에서 만난 독일 친구가 준 책에 써 있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왠만하면 안가는게 좋을 거라고 나에게 신신당부했었다. 자기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마을은 위험하지는 않지만 위생적이지 않아서 여행객이 많이 찾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난 위생적이지 않은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모 어떻게 되기야 하겠어? 라는 생각을 갖고 왔는데 밤에 도착해서 위험했다. 숲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다섯시밖에 안됐는데 창으로 찌를려고 하지 않나. 손을 올리고 배낭 다 검사받고 초코바 두개를 뺏기고 나서야 마을에 구석에 있는 움집에 재워줬다. 저녁밥은 먹지도 못했다. 한참 걸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도 재워준게 어디야라는 생각을 했다.
아침도 먹었겠다. 적당히 이 마을은 어떤가라고 둘러보려고 하는데 아까 그녀석들이 또 와서 장난을 건다. 나 밥먹었으니까 니네랑 그만 놀꺼야 -_- 무시해버렸다. 그랬더니 계속 쫓아온다. 아 이녀석들 정말... 이 마을은 참 특이한 마을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곳 같다. 마을에 전자제품이라고는 자동차 한대. 그것도 족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것인데 한 1950년대 정도의 차인것 같다. 겨우겨우 움직이기만 하는 차 같다. 문짝도 없고 지붕도 없고..가나 모르겠다..에효..
신기하게 여자들은 또 위에를 다 입고 있다. 하도 봐서 질리긴 하지만 그래도 입은걸 보니 좀 서운하기는 했다. 곧 다른 마을을 가니까... 나도 모르게 이상한 걸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_-;;
하루만 여행하고 이 마을을 떠나기에는 좀 아쉬움이 많은 것 같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뒤에서도 건장한 사내들이 눈 밑에 하얀거를 칠하고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어서 안갈 수가 없겠다. 버스가 있는 마을까지는 걸어서 3일정도 걸릴 거 같다. 족장이 좀 태워다 주면 좋으련만..괜한 부탁을 했다가 이 곳이 내 마지막 여행지가 될 것 같아 참았다. 부디 몸 조심해서 꼭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벌써 여행을 떠난지 14개월째이다. 참 많은 나라를 돌았다. 또 내겐 내가 꼭 돌아야 할 많은 나라들이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생각을 하니까 좋기도 한데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고 2년동안 무슨 새로운 소식이 많을지..무섭고 궁금하다.
그래도 오늘은 여유가 있어서 이렇게 글이라도 쓰는데 내일부터는 또 어떨지 모르겠네. 모기가 많아서 예방주사라도 맞아야 할텐데 이건 모 마을이 없으니..
암튼 잘 지내고 있어라. 곧 간다.
배낭을 메고 나는 또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