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2. 19:17 여행기
시베리아 횡단 열차
벌써 며칠째 기차안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라는 것이 길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 지겹다. 자고 깨도 가고 있고 자고 깨도 가고 있다. 대각선에 앉은 사람이 영어로 몇킬로나 왔냐고 승무원한테 물어봤다. 1500키로 뭐라는게 1500키로 왔다는 건지 1500키로 남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아직도 많이 남은 건 확실하다.
꾸뻬를 타서 도둑걱정없이 자는게 좋긴한데. 이 안에도 도둑이 있으면 어쩌나 생각을 한다. 같이 여행하자고 하면서 꼬드겨서 털어가는 놈들 엄청 많으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지..하여간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차창밖을 보니 새싹이 새록새록 자라는게 봄인갑다 싶다. 바이칼은 정말 깨끗한 물이 고요하게 있어서 고요한 바다 같다는데 정말 어떨지 기대가 너무 된다. 지금 지나가면서 보는 눈 덮힌 산이 그곳에도 있을지. 저런 눈 덮힌 산도 한번쯤은 올라보고 싶은데 네팔에서 고생하고 나니까 조금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고산병약도 네팔에서 다 써서 가려해도 좀 걱정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사둘껄.
페르난도랑 알렌도라는 잘도 자고 있다. 쟤네는 정말 잘 어울린다. 4주밖에 안됐다는 것 들이 10년동안 같이 산 부부처럼 하고 다닌다. 쟤들 각자 자기 나라 돌아가면 헤어질려나? 한국같았으면 내가 중간에서 이간질을 막 할텐데 영어로 이간질을 하려니 너무 어색하고 잘 안된다. 이건 모 영어만 쓴지 1년이 넘는데 이렇게 안되니..여행한다고 말이 확 느는건 아니다. 그래도 상황판단 같은거는 죽어라 잘한다 그건 정말 많이 는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겨울옷을 샀는데 진짜 얘네 말 듣고 폴란드에서 살껄 하는 후회가 된다. 너무 비싸다. 그래도 이 털모자는 정말 잘 샀다. 내가 머리통이 커서 오래 쓰면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왠지 모를 멋이 느껴진다. 따뜻하기도 하고. 벗으면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좀 허기진 것 같아 배낭에서 마른 식빵이랑 땅콩쨈을 꺼내 발랐다. 혼자 먹을려고 눈치를 보다 프랭크한테 딱 걸렸다. 이자식은 정말 얍삽하다. 모 먹을려고만 하면 눈치를 준다. 저 커플은 자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시키는 왜 잠도 안자. 빵하나에다 쨈을 발라 주면서 한국말로 웃으면서 "쳐먹어~"했다. 좋다고 "땡큐"한다. 미국애들이 원래 이런가 싶다. 같이 여행한 미국애는 별로 없어서 성격파악하기 힘들다. 얘네들이 가장 자기 얘기 안하고 폐쇄적인 것 같다. 얘만 그럴 수도 있고..
빵 먹으면서 밖을 보며 창에 입김을 불어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창문에 KOREA라고 썼다. 프랭크가 그립냐고 물어봤다. 난 정말 아무 생각없이 쓴 것인데 그렇게 물어보니 또 그런 것 같다고도 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나라가 그렇게 그립지는 않다. 그리운 것은 사람들이지. 빵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맛을 느끼기 보다는 배를 채워야 하는 생각에 약간 덜 씹고 삼킨다. 그래야 위에 오래 남아 있어서 좀 더 허기짐을 막을 수 있다. 기차에 타기 전에 먹을 것을 좀 사놔서 기차에서 뭘 안사먹고 내껄 먹는다. 중간에 역에서 내려서 먹을 것을 좀 사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물가가 비싸서 모 먹을 만한게 없다.
춥다. 안춥다고 느껴질때도 눈을 떠보면 약간은 추운 생각이 든다. 창문밖에는 눈이 새 하얗게 쌓여있는데..당연히 그렇겠지. 추운건 질색인데.
6시간 후에 바이칼에 도착한단다. 휴..한숨 푹 자고 나면 도착하겠지싶다. 요즘에 피로가 많이 쌓였는데 어깨를 말랑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기회에 여독을 확실하게 풀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