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취리히는 볼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쇼핑 할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없다는 것이다. 환전을 많이 하지 않아서 하나도 못샀다. 스위스에서는 적어도 시계하나 쯤은 사야된다는 생각을 했는데.어쩌다보니 하나도 사질 못했다. 대신 구경은 정말 실컷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취리히는 걸어다니기에도 좋을 만큼 아담했다. 리마트강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깨끗했고 취리히 대성당은 모..그냥 성당이었다. 제대로 밥을 못먹고 중간에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서 먹었는데 배가 잘 고프지 않은 나도 배가 고플 정도로 걸었다. 물이 비싸서 사먹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제 갈 이탈리아는 이것보다 더 비쌀 수도 있는데. 정말 걱정이다.
아침일찍 출발하는 유레일이 제일 빠른게 9시09분이었다. 두시간 단위로 취리히 센트럴에서 밀라노 센트랄레까지 가는데 약 4시간 정도 걸린다. 아침에 가장 빠른걸 타야지 밀라노의 점심을 볼 수 있기 때문에 9시 껄 타기로 했다. 피터도 9시것을 타고 밀라노로 간다고 해서 같이 예매를 했는데 피터는 그걸 타고 밀라노에서 곧장 제노바로 간다고 한다. 나는 내일 밀라노에서 베니스로 가기 때문에 피터와는 이렇게 5일동안만 같이 있게 되었다. 어제 말했으면 같이 술이라도 한잔 했을 텐데 이자식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자기는 제노바로 가기로 했단다. 밀라노에서라도 같이 놀면 좋으련만 바로 간다니. 아쉽다. 처음 생긴 독일 친구였는데. 이 놈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짝~달라붙는 맥주 찾기는 어려웠을 거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자기를 페트르로 불러달랜다. 피터는 싫다나 뭐라나..
아침에 늦게 일어났지만 집이 어차피 역 근처라 부랴부랴 준비해서 늦지 않게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이래서 항상 떠나는 날 저녁에는 술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짐을 확실히 챙기는 것이다.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다음날 챙겨갈 짐은 확실히 다시한번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시간동안의 기차여행동안 할 일이 뭐 있을까 하다가 카메라 정리를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하는 거라 카메라가 꽉 찬것 같다. 일단 모든 파일을 랩탑으로 옮기고 그 중에 가슴이 탁 막히게 아름다운 사진들은 일단 따로 빼서 놓는다. 이 사진들은 후보정을 거쳐서 다시 다른 폴더로 옮길 것이다. 숙소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포토샵으로 하는 사진 후보정이다. 매일 하지 않으면 해야 할 양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일기를 쓰는 것 처럼 매일 매일 해야한다. 하지만 다짐대로 되지 않는다. 일단 랩탑에 사진을 옮기는 것도 이게 얼마만인가.
사진을 열심히 옮기며 잘 찍힌 사진들을 찾고 있는데 저쪽에서 아이리스가 크게 놀랜 소리를 냈다. "Wow fantastic!"
뭔가 하고 창밖을 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밖에 펼쳐진 장면..
말이 필요없다.
어제 비가 와서 약간 물이 불었지만 정말 아름다운 계곡..
이런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처럼 행복하다. 뭔가 이런 곳에 내가 살았던 것 같은 환상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당장이라도 내려서 저 곳에서 머물고 싶기도 하다. 유럽인들과는 그렇게 가까이 지내지 못한게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콜롬비아에 갔을 때나 필리핀에서는 잘도 어린애들과 친해져서 일반 가정집에서 잤었는데 왠지 유럽은 그게 잘 안된다. 괜히 큰 도시만 찾아다니게 되고 이렇게 중소도시, 시골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거나 차를 끌고 다니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유레일 여행을 하면 이것이 가장 큰 단점인 것 같다.
어느새 밀라노에 도착했는데 약간의 연착 때문에 1시 20분이 다 되어서야 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로 서브웨이가 있어서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표는 1유로였다. 유로는 독일에서 여유있게 찾아두어서 베니스에 갈때까지는 환전이 필요없을것 같다. 은행 찾는 것이 워낙 고된일이 아닐 수 없다.
1호선을 타고 Duomo역으로 가서 유스호스텔을 찾아갔는데 예약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치우질 않았다는 이유로 입장이 불가능 했다. 짐만 맡기고 나갈껀데도 아직은 들어오지 말란다. 싸기지 없는 주인이다. 뚱뚱한 게 참 말썽이다. 진짜! 한 15분 정도 기다리고 나서 들어갈 수 있었다. 짐을 맡기고 바로 나가려고 하자 주인이 말하길 그럴꺼면 아까 들어와도 됐는데 이런다. 아까 말할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만 이제와서..처음 말하는 이탈리아 인이 이러니까 이탈리아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다. 아 참..담배는 좀 끄지..
아직 점심을 못 먹어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길거리에 파는 음식이 죄다 5유로 이상이다. 스위스에서 비싸서 이탈리아에서는 꼭 맛있는 음식 많이 먹자고 다짐했는데 이렇다니..절망이다. 이탈리아까지만 다시 꾹 참기로 했다. 다행히 저녁은 호스텔에 있는 주방을 써도 된다고 해서 재료를 사 가기로 했다. 설마 재료도 비싸진 않겠지..밀라노는 정말 쇼핑 천국이다. 지금은 쇼핑기간이 아니지만 유럽은 여름과 겨울 두번 엄청난 특급세일 기간이 있고 이때는 명품도(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명품)엄청나게 싸다. 정장 하나에 200유로 정도? 우리나라에서는 800만원 정도 하는 거란다..말도 안돼;;하지만 진짜다. 밀라노에 있는 쇼핑몰은 정말 건물부터가 화려하다.
너무 아름답다보니 쇼핑을 하는 건지 건물 구경을 하는 건지도 모를 정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들 패션에 관심도 많고 꾸미기를 좋아해서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표정이다. 이게 참 마음에 들었다. 난 아직까지 꾸미는 방법을 잘 모르고 남자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 남자들은 정말 다르다. 뭔가 안꾸민듯하면서도 꾸민 듯한 얼굴. 다듬은 듯하면서도 안다듬은 몸매는 정말 끝내준다. 처음부터 쇼핑을 염두에 두고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걷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눈이 돌아가는 곳마다 색색가지 아름다운 옷과 가방, 신발들로 인해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남자인 나도 이런데 여자들은 오죽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