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건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현실에 안주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럼 좀 부정적인 늬앙스고 타협한다는게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감정없이 표현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어휘인 것 같다.

어렸을 땐 나도 꽤 강성이었다. 우기는 것도 많았고 토론을 좋아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이기고 싶어했다. 국민학교 때는 진짜 엄청나게 많이 싸웠다. 중학교올라가서도 3월2일, 3일 이틀동안 주먹질을 해댔으니 진짜 쓰레기였지. 하지만 그 날 이후 여태까지 누구를 때린 적은 없다. 아. 중3때 동생 한 번 때린 적이 있었다. 진짜 난 나쁜 형이었다.

정치에 관심갖지 않는 사람들이 싫었다. 거지같은 특정 당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ㅂㅅ들보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바보들을 더 싫어했다. 군대에서도 불의를 요구하는 선임들의 말을 듣지 않고 버티다 맞기도 했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직장상사에게 대들다 잘릴 뻔 한적도 있다. 누구처럼 대학 때 학생운동의 전면에 나서서 주도한 적은 없어도 거리 시위도 자주 나갔고 명박산성 때 물대포를 맞기도 했었다. 그 때는 그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요새 드는 생각은 <그냥 적당히 타협하자>이다. 이러지 않았는데. 목표가 생기면 다른 거 안보고 그냥 모든 일을 제쳐두고 그 일에 올인하던 나였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라면 그걸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샌 몸을 사리게 된다. 사실 올인을 하건 지랄을 하건 안되는 건 안되는 거더라고. 몇번의 사업을 망하고 나서 부턴 하기도 전에 겁부터 나더라. 그래서 남들 하는거 보면 그 생각 때문에 돈이 되지 않더라도 도와주고 싶고. 내가 그만큼 어려웠으니까. 난 진짜 맹세코 그 때 나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성공했을 거다. 지금에야 네트워크도 많이 생기고 투자니 해외진출이니 다 알지만 그땐 진짜 마케팅도 하나도 몰랐으니..

암튼 올해 들어 뭔가 더 몸을 사리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도전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뭘 관두지도 못하겠고.

나이가 들면서 계속 타협하게 된다는 건 뭔가 지킬 게 생겨서 그런 것 같다. 나도 이제 꼰대가 된 거지. 먹여살릴 강아지, 고양이도 있고 몸에 딱 맞는 회사도 있고. 날 믿어주는 사람들도 있고. 내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 물론 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이런 것들이 사실 부담이 될 때도 있는데 그렇다고 이제 옛날처럼 훅 버리고 떠나고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진짜 예전엔 거의 2년마다 번호를 바꿨었는데 이젠 쉽게 번호를 바꿀 수도 없다. 너무 퍼져버렸다.

암튼 이렇게 지키고 싶은 것이 늘어나면서 옛날처럼 막 내 멋대로 관두고, 떠나고, 잠수타고 그럴 수 없게 되어버려 안타깝다. 멋대로 제주에 한 달을 살고, 내일 싼 비행기가 나와서 훌쩍 미국에 가고 그럴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꿈을 꾸지만 당장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작년만 해도 내년엔 결혼을 할 줄 알았다.그리고 다음 해엔 애아빠가 될 줄 알았지.

그런데 지금은 그럴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좋긴한데 너무도 평온히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 행복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몇 년만에 느끼는 달콤한 안정감이 포근하기도 하다. 사실 지난 몇 년간 돈은 지금보다 많이 벌었다고 해도 뭔가 불안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때 맛보지 못한 안정감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그 불안감 때문에 정말 시간을 쪼개 열심히 살았던 하루가 안정감을 찾자 너무 쉽게도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싫기도 하다. 요샌 그 때 처럼 노력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목표를 세우고 나를 단련해야하는데 난 이미 세상과 타협을 하고 그렇게 흘러가는 배에 몸을 실은 듯 평온히 배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게 좀 싫다. 이럴까봐 이 길을 선택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ㅎㅎ


일은 일이고 삶을 삶이다. 이제 일은 지금처럼 하되 취미면에서 좀 도전을 하고 싶다. 일단 하던 시나리오 작업부터, 그리고 나서 올해 반드시 책을 낼 것이다. 반드시.

나이를 먹으면서 일은 이제 어느정도 타협을 한 것 같다. 이제 삶에서 도전하자. 즐겁게 행복하게.

행복하게 삽시다. 꼭. 행복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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