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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2 그리스, 미코노스1

2012. 6. 22. 19:53 여행기

그리스, 미코노스1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렇다고 그냥 여행일 중 하루를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내일 당장 사모스로 떠나는 배를 예약한 터라 오늘 하루 이렇게 숙소에서 보내다간 나중에 아까워서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밖이 덥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젖어도 되는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보아하니 아침에만 좀 비가 오다가 점심 때쯤 갤 것 같기도 하고.. 경사가 가파른 곳이 많아 신발을 어떤 걸 신고 갈까 한 일분동안 고민하다가 결국엔 그냥 슬리퍼를 신기로 했다. 경사 가파른 곳은 안가면 되지 뭐. 쿨한 결정이었다.

옆방에 잠 들어 있는 모리를 깨웠다. 오늘 아침에 같이 나와서 집주인 아저씨의 보트를 타기로 했었는데 날씨가 이래서 많이 속상한 것 같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그럴만도 하지.. 오늘 아침도 안먹었는데 배는 고프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I'm ready to go!>

다행이었다. 혼자보다 둘이. 둘 보다 셋이 좋은 나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센치해지기 때문에 이 녀석이 없었더라면 많이 외로웠을지 모른다. 그건 정말 싫은 것 중 하나이다. 비오는 날 혼자 걷는 거리라..

밖에 나와서 휴대폰을 보고 미리 적어둔 오늘 갈 곳을 보고 있는데 모리가 아무것도 안가지고 나왔다. 이 놈은 도대체가 정신이 있는건지..카메라도 안가져오고 뭐하냐고 말했다.

<I dont need it. cause I have my big brain>

자기 머리를 가르키며 해맑게 웃는 이녀석은 정말로 꼴통이다. 으이구 그래. 니 맘대로 해라.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믿고 카메라 안가져온 나의 얍삽함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민망하다. 그래 까짓것. 돈은 챙겨왔겠지 뭐. 나도 점심때 먹을 샌드위치밖에 없는데...

일단 무작정 파라다이스 비치쪽으로 향했다. 밤새 바람도 많이 불어서인지 바닥엔 나뭇가지들과 나뭇잎이 가득이다. 저거 쓸려면 정말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별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은 뭐하러 하는지.. 젖은 낙엽. 어쩌면 그건 내 인생 같다싶기도 하고. 뭔가 애절한 동질감을 느낀다..오...

길을 걷고 있는데 저쪽에서 완전 비옷을 차려입은 왠 프랑스인 커플이 우리를 부른다. 여자가 이뻐서 냅다 달려가 보니 자기네들이 지금 어딘지 모르겠다고 지도를 보여 달란다. 흠. 나도 지도가 없는데..하고 살짝 당황해하자 아무것도 안가져온 줄 알았던 모리가 바지 속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도를 꺼내 보여주었다. 처음엔 약간 섬칫하게 놀라던 그 남자도 급했는지 뭔지 그 지도를 말없이 받아들었다. 여자는 지도를 만지지는 않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 비가 와서인지..그 지도가 따듯해서인지. 종이에서 살살 증기가 올라온다. 그 장면이 어찌나 웃기던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꼬깃꼬깃한 지도에서 나오는 김..ㅋ 옆에서 진짜 미치게 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프랑스인 커플도 우리처럼 비치에 가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험한꼴 안당해도 되는데 왜 하필..그런 험한 꼴을..이라는 생각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시원하게 오케이를 외쳤으나 남자가 약간 생각을 하더니 불어로 여자친구한테 뭐라고 했다. 그냥 느낌에 저 남자애들을 왜 따라가냐 뭐 이런 뜻인 듯. 내가 보기에도 나나 모리나 행색이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에 충분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같아도 안따라갔을 듯 하다. 하지만 나나 모리나 그냥 씨익~ 웃고 있어서 그리 미친놈(?)같지는 않았는지 마지못해 여자친구의 말을 따르기로 했나보다. 졸지에 이상한놈으로 몰린 우리는 앞장서 가기로 했다. 기분이 나빠도 뭐..동양인들을 저렇게 보는 저 놈이 잘못된거지 뭐..하는 생각과 함께.

큰 펠리칸을 지나 한 열발자국 정도 걸었나? 그리스인 할아버지 한 분이 아~주 유창한 영국식 악센트의 영어로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프랑스인 녀석들과 아는 사이인 것 같다. 어제 저 할배 집에서 밥을 먹었나보다. 그것도 좀 비싸게. 이 여행이 그들의 허니문이라고 했다. 셋이 몇마디 하더만 우리 쪽을 향해 여자가 말을 걸었다.

<He has a beautiful boat. Do you want to join us?>

비가 오고 파도가 거센 이 날씨에 왠 개소리인가 하고 무시하고 몇 발자국 더 가려는데 눈 앞에 보이는 바다는 전혀 움직임이 없이 고요했다. 마치 폭풍전 그것처럼. 아니 이놈의 동네는 이렇게 조용하게 비가 오는건가??

깔끔하게 비가 그치지도, 하늘이 맑지도 않지만 바다만큼은 정말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원래대로라면 주인집 배를 타고 섬 일주를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비온다는 핑계로 캔슬시키고 밖으로 놀러간 이 영감은 도대체 파도를 보긴 했는지 원.. 어처구니가 없다.

모리를 쳐다보니 날 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맘대로 하란 뜻인지.. 나도 배는 타고 싶고 비치도 가고 싶은데..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러자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We can give you a ride to the beach>

바로 오케이. 어차피 바닥이 미끄러워 언덕 오르기도 빡셌는데 잘됐다 싶었다. 모리는 이미 윗옷을 바지안으로 접어넣으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얍삽한 놈..저놈은 나를 얍삽하다고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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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reative 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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