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오스트레일리아, 내륙

Creative JD 2012. 6. 22. 19:55

달리다 보면 끝이 있을 것 같았다.


광활한 대지는 나에게 끝을 허락하지 않았다. 벌써 30분째 똑같은 색깔의 배경이 나를 미치게 한다. 똑같은 도로. 끝없이 펼쳐져있는 2차선 도로. 사막 한가운데의 나. 미쳐버리기 직전이다.

가져온 물은 겨우 10리터 남짓. 그것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이제 몇방울의 물도 아껴 써야 할때다. 언제 다음 건물이 나올지 모른다. 저쪽 멀리서 캥거루 뼈로 추정되는 하얀 물체가 보이는데.. 그건 아니겠지..

호주를 달리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땅은 매우 넓다. 매우매우매우 넓다. 지금 달려온 거리가 한 600Km는 되는 것 같은데.. 물론 심리적 거리다. 혼자 있어서 그런지 그 감이 없다 지금은. 시계나 있었으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방향감각도 없다. 나에겐 오직 이 곧게 뻗은 사막 한가운데의 2차선 도로 뿐.

트렁크를 위로 제끼고 그늘을 만들어 잠시 쉬었다 가야겠다. 오픈카는 이래서 쓸모가 없다. 에어컨에 없다보니 차를 산 의미도 없고. 비오면 또 낭패고. 퍼스에 도착하면 반드시 다른 차를 알아볼 것이다. 제이미의 사탕발림에 속아 애초부터 싼 차를 선택한 내 잘못이 크지. 물을 한 모금 들이켰는데 물이 뜨겁다. 젠장. 이게 뭐하는 짓인가 진짜. 목이 타서 물을 마셨는데 목을 삶을 뻔했다.

10분 정도 쉬었나? 저쪽에서 차한대가 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뭘까. 저 차는. 누군가 알고 싶다. 과연 누굴까? 잠깐이라도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나는 지금 외롭다. 몹시. 일주일동안 사람과 단 두마디 해보았다. 트렁크에는 먹을 것이 가득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사람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차가 다가올 수록 내 심장도 그 차의 속도처럼 속도감을 높혀 뛰고 있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침을 삼켰다

꿀꺽 꿀꺽. 물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침도 잘 안나오고 침샘에서는 마른 침만 약간 나온다. 100미터 전방으로 차가 보이는데 웨건식인 걸로 봐서는 남자인 것 같다. 여자들은 혼자 웨건을 타는 경우가 거의 없는 걸로 봐서 남자가 운전에 여자 하나 정도 타 있을 것 같다. 물을 달라는 식으로 물통을 흔들흔들 거리면서 차도로 나와 차를 세우기로 했다.

차가 서서히 속도를 낮추면 다가온다. 설 모양이다. 다행이다. 안서면 어쩌나 고민도 했었고.. 약간이지만 치고가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물론 이들이 아직 호의적인지는 모른다. 아직 차만 세웠을 뿐.

인사를 했다.

Hi~

남자가 운전석에서 머리만 빼꼼 내 놓으면서 답했다.

Hi~

이마에 썬글라스를 끼고 손으로 햇볕을 가리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마치 짜증이 나는 듯 했다. 내린 창문 너머로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는게 이녀석 차는 에어컨을 만빵으로 틀고 다니는 것 같다. 부러운 놈. 피부색을 보니 동양인 같은데 여기에 오래 있었는지 조금은 검게 그을린 피부다. 면도도 안했는지 얼굴이 전체적으로 꾀죄죄해 보였지만 옷을 입은 스타일이나 그런 걸로 봤을 때는 꽤나 있는 집 자식처럼 보였다. 왼팔을 밖으로 내놓았는데 시계도 으리으리하고.. 일본 사람같다.

Japanese?

No. Korean.

한국사람이란다.. 전혀 한국사람같지 않게 생겼고 한국사람일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자세히 보니 한국여자인 것 같다. 아마도??

아 저도 한국사람입니다. 반갑게 이야기했다. 드넓은 호주벌판에서 그것도 20분만에 마주친 차. 그것도 세운 차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정말 뜻밖의 수확이다. 뭐..아직 수확한 건 딱히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