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되고 싶었던 달
어렸을 때 나는 태양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빛나고 싶었고 그렇게 남을 비춰주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 즐기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놀았다고 해야할까..
어느 순간 나는 달이 되고 있었다.
태양이 없으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그렇기 때문에 태양이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별. 실망할 것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으니까.
시골에 살았던 나는 달빛이 밤에 얼마나 밝은 지 알고 있다. 어둑한 숲길을 지날 때에도, 개구리소리가 가득한 논길을 지날 때에도 달의 빛에 의지해 충분히 집에 갈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집으로, 혹은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할 수 있는 달이 되었다.
컨설팅이란 일이 결코 창업자보다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많은 창업 끝에 이런 길을 찾았다. 여러가지를 해보고 싶었던 나는 그런 여러가지 일을 하다 실패를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여러가지 일을 하고 싶다. 그렇기에 컨설팅이라는 직업은 나에겐 딱 맞는 일이었다. 아직도 창업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언젠가는 할 것이라는 꿈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아직 스스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작년만 해도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었다고 생각했다. 혼자 다니면서 이 일 저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고 또 그러다보니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었다. 꿈도 못 꿀 것을 얻기도 하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불안정한 대박보다 안정적인 소박이 더 좋은 것 같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은 자유로이 꿈을 꾸는 가망성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에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돈은 훨씬 더 벌게 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근데 나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돈도 덜 벌게 되고 소중한 것도 잃게 되었다. 자유.
태양인 줄 알았던 나는 이제 회사라는 태양이 비춰주는 빛을 받아야만 빛낼 수 있는 달이 되었다. 어느새 혼자 움직이기는 힘든 존재가 되었고 소속감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으며 회사가 주는 안락함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길들여지고 말았다. 야생에 있을 때 나는 자유로이 시간을 쓰면서 지금의 두배를 벌었었는데. 그 땐 불안했어도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꿈이 좀 줄어든 것 같긴 하다. 이건 내가 아닌데. 내일이면 일거리가 없어질 것 같던 불안함도 있었지만 그런 불안함이 날 계속 노력하게 만들었는데 이젠 그런 불안함이 없으니 스스로 좀 나태해지는 것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괜찮다. 달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 눈부셔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태양은 이제 부담스럽다. 난 이제 달이 좋다. 이게 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약간 멀리서. 점점 더 환하게. 그래. 이왕 달이라면 그래도 보름달이 낫지.
괜찮다. 난 이제 보름달이다.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누군가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