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붕어빵 3개
Creative JD
2017. 4. 24. 01:01
대학 다닐 때 일이다.
학교 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마을버스를 타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세븐 일레븐이 있었다. 고 바로 앞에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엔 항상 붕어빵을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우리 집은 그 쪽이 아니라서 거길 자주 가진 않았었다. 가끔 역 쪽에 누굴 데려다 주거나 데릴러 갈 때 그 붕어빵 쪽을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그 붕어빵 위에 적힌, 사과박스 골판지에 친절하지 않게 매직으로 휘갈기듯 쓴 글.
붕어빵 1개 300원, 3개 1000원.
몇달 동안 지나가면서 그 글을 보고 난 굉장히 의아했었다. 아니 규모의 경제가 되어야하는데 왜 많이 팔면서 가격이 비싸져야하나. 이 아줌마는 업셀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 아줌마의 마케팅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것을 고민했고 그 때마다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깊은 고민을 함께 나누었었다.
당시 우리 동네 쪽 시장 어귀의 붕어빵집은 한마리에 백원이었다. 그니까 10마리를 사야 천원인데 이 붕어빵은 그것보다 통통하지도, 그렇다고 팥말고 슈크림이나 생크림도 아니고, 잉어빵이나 국화빵도 아닌데 왜 한마리에 3백원이며 더 의아한 것은 왜 4마리에 천원이 아닌 3마리에 천원인걸까. 자릿세 때문에? 세븐일레븐 점주와의 업무제휴로 인해 가격 결정권을 붕어빵 주인이 갖지 못한 것일까? 정말 많은 생각을 했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 붕어빵 가게는 생각보다 오래 장사를 하였다. 위치가 기가 막혔던게 마을버스 기다리는 줄 딱 옆에 있어 절묘하게 기다리면서 사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는 버스카드가 아니어서 현금주고 버스를 타야했다. 그러다보니 현금으로 한마리씩 많이도 사먹었다. 특히나 비오는 날 버스를 기다리다 옷이 젖어 추운 날에는 젖은 붕어빵의 따듯한 온기가 그리워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눈내리는 추운 날은 어떤가. 붕어빵의 배를 가르면 어김없이 터지는 붉은 팥앙금은 나로 하여금 손과 입, 그리고 몸을 따스하게 데펴주었다.
특별히 맛있는 붕어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먹는 타이밍이 버스를 기다리는, 짧지만 지루한 그 시간이었기 때문에 잘 되었을 수도 있다. 확실히 맛있는 붕어빵은 아니었지만 그 붕어빵을 먹는 시간은 참 소중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랑 먹는지, 어디에서 먹는지, 언제 먹는지 등 다양한 맥락에서 음식의 맛, 느낌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 붕어빵의 맛은 그 것을 먹는 타이밍이 아주 주효했었다.
하지만 나의 의문은 계속 커져만 갔다. 맛은 차이가 없고 품질도 대동소이한데 이 아줌마가 결정한 가격. 특히 한 개 300원, 3개 천원 전략은 어디서 나온 걸까. 골판지 메뉴판이 오랜 시간 빛바랜 흔적으로 보아 오타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케팅 고수 아줌마의 비법이 따로 있을 터. 그것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 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흰색 털 잠바를 입고 있었다. 난 매일 거의 같은 옷을 입고 다녔기때문에 소매부분에 때가 좀 많이 탄 채로 그냥 입고 다녔다. 그러다 그 옷을 세탁소에 맡기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그 붕어빵 가게와 마주치게 되었다.
살짝 긴장되었다. 비법을 전수받기위해 스승님을 찾는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붕어빵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아줌마는 분주하게 붕어를 굽고 계셨다. 이미 만들어진 붕어 3마리가 위에 올려져 있었고 붕어빵 틀에는 흰색 반죽의 밀가루에 아줌마가 팥앙금을 숟가락으로 퍽퍽 리드미컬하게 넣고 계셨다. 난 그 앞으로 다가가 아줌마에게 붕어빵을 주문했다.
"붕어빵 3개요" 떨렸다. 과연 얼마라고 할까.
"천원" 퉁명스럽게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분명 천원이었다. 3마리에 천원. 그것은 일단 진짜였다. 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근데요. 한마리에는 300원인데 왜 3마리는 천원이에요?" 라고 묻자 앙금을 넣던 아줌마의 숟가락 질이 멈춰지고 나를 밑에서 위로 훑어보면서 아주 한심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3마리 싸가면 종이값 들잖아! 거기다 난 3마리 담아줘야하고. 그럼 그만큼 노동력들고!"
그랬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종이봉투는 비쌌다. 나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공부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신성한 노동력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그렇네. 한마리 먹을땐 비치되어있는 종이 한장으로 셀프로 집어먹으면 되는데 3마리를 시키면 아주머니의 노동력을 사용하게 되니까 그 만큼의 돈을 더 지불해야하는 구나. 정말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두마리만 먹을께요"
하고 두마리를 손으로 집고 600원을 주고 왔다. 그 때 아줌마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뭐 이런 병신이...라는 눈빛.
규모의 경제는 어찌보면 아주 쉬운 경제학 원리이다. 노동력의 댓가는 돈으로 지불하게 하는 것이 맞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서비스로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아줌마는 4마리에 1천원으로 붕어빵을 팔았다면 훨씬 더 좋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암튼 그 의문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그 붕어빵 가게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사라지게 되었다. 버스의 배차가 짧아져 줄이 길지 않게 되었고 학교버스가 투입되면서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들리는 소문으로는 시장 골목 안쪽에서 또 붕어빵을 팔고 있단 말을 들을 적은 있지만 정확히 그 분인지는 확인되지않았다.
오늘 저녁으로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어 재료를 사러 나갔는데 홈플이 일욜이라 문을 닫아 동네 순두부 가게에서 포장을 해가기로 했다. 식당에서 혼밥을 해본적이 없어 포장주문을 했는데 밥먹는 사람들을 보니 순두부찌개에 테이블마다 올려져있는 날계란을 마구 넣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식탁마다 올려져있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구이, 그것도 국내산 고등어. 해물순두부에 계란이 무제한 가능. 거기다 고등어구이가 메인 반찬인 순두부찌개의 가격이 7천원. 완전 혜자인 이 순두부의 포장을 난 서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윽고 아주머니께서 검정색 비닐봉투에 담긴 플라스틱 국그릇에 담긴 내 순두부를 주셨다. 그런데 계란도, 고등어도 없었다. 심지어 집에 가서 끓여서 먹으란다. 데펴먹는 것도 아니고 끓여먹으라니.. 가격은 똑같이 7천원. 갑자기 혜자가 창렬로 성전환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내가 여기서 먹지않고 집에서 먹으면 설거지거리도 없어져, 반찬도 안나가, 자리 차지도 안하니 손님도 더받을 수 있지, 물을 마시나 고등어가 나가나 계란이 나가나. 심지어 가스도 안쓰고 후식으로 나오는 매실차도 안마셨구만 가격은 똑같이 7천원이라니. 근데 이 가게는 망할 수는 없을 거다. 와서 먹는 사람들은 이 만큼 만족감을 크게 느낄테니까. 나도 여기서 먹은 적이 있는데 맛있게 먹었었으니까. 그래서 또 온거니까.
검은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 10여년전 그 붕어빵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아줌마는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붕어빵을 팔고 계실까. 기적의 경제학자여..
암튼 순두부는 나름 맛있었다.
-끝-
학교 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마을버스를 타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세븐 일레븐이 있었다. 고 바로 앞에 약간 오목하게 들어간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엔 항상 붕어빵을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우리 집은 그 쪽이 아니라서 거길 자주 가진 않았었다. 가끔 역 쪽에 누굴 데려다 주거나 데릴러 갈 때 그 붕어빵 쪽을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그 붕어빵 위에 적힌, 사과박스 골판지에 친절하지 않게 매직으로 휘갈기듯 쓴 글.
붕어빵 1개 300원, 3개 1000원.
몇달 동안 지나가면서 그 글을 보고 난 굉장히 의아했었다. 아니 규모의 경제가 되어야하는데 왜 많이 팔면서 가격이 비싸져야하나. 이 아줌마는 업셀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 아줌마의 마케팅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것을 고민했고 그 때마다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깊은 고민을 함께 나누었었다.
당시 우리 동네 쪽 시장 어귀의 붕어빵집은 한마리에 백원이었다. 그니까 10마리를 사야 천원인데 이 붕어빵은 그것보다 통통하지도, 그렇다고 팥말고 슈크림이나 생크림도 아니고, 잉어빵이나 국화빵도 아닌데 왜 한마리에 3백원이며 더 의아한 것은 왜 4마리에 천원이 아닌 3마리에 천원인걸까. 자릿세 때문에? 세븐일레븐 점주와의 업무제휴로 인해 가격 결정권을 붕어빵 주인이 갖지 못한 것일까? 정말 많은 생각을 했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 붕어빵 가게는 생각보다 오래 장사를 하였다. 위치가 기가 막혔던게 마을버스 기다리는 줄 딱 옆에 있어 절묘하게 기다리면서 사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는 버스카드가 아니어서 현금주고 버스를 타야했다. 그러다보니 현금으로 한마리씩 많이도 사먹었다. 특히나 비오는 날 버스를 기다리다 옷이 젖어 추운 날에는 젖은 붕어빵의 따듯한 온기가 그리워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눈내리는 추운 날은 어떤가. 붕어빵의 배를 가르면 어김없이 터지는 붉은 팥앙금은 나로 하여금 손과 입, 그리고 몸을 따스하게 데펴주었다.
특별히 맛있는 붕어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을 먹는 타이밍이 버스를 기다리는, 짧지만 지루한 그 시간이었기 때문에 잘 되었을 수도 있다. 확실히 맛있는 붕어빵은 아니었지만 그 붕어빵을 먹는 시간은 참 소중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랑 먹는지, 어디에서 먹는지, 언제 먹는지 등 다양한 맥락에서 음식의 맛, 느낌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 붕어빵의 맛은 그 것을 먹는 타이밍이 아주 주효했었다.
하지만 나의 의문은 계속 커져만 갔다. 맛은 차이가 없고 품질도 대동소이한데 이 아줌마가 결정한 가격. 특히 한 개 300원, 3개 천원 전략은 어디서 나온 걸까. 골판지 메뉴판이 오랜 시간 빛바랜 흔적으로 보아 오타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케팅 고수 아줌마의 비법이 따로 있을 터. 그것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 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나는 흰색 털 잠바를 입고 있었다. 난 매일 거의 같은 옷을 입고 다녔기때문에 소매부분에 때가 좀 많이 탄 채로 그냥 입고 다녔다. 그러다 그 옷을 세탁소에 맡기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그 붕어빵 가게와 마주치게 되었다.
살짝 긴장되었다. 비법을 전수받기위해 스승님을 찾는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붕어빵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아줌마는 분주하게 붕어를 굽고 계셨다. 이미 만들어진 붕어 3마리가 위에 올려져 있었고 붕어빵 틀에는 흰색 반죽의 밀가루에 아줌마가 팥앙금을 숟가락으로 퍽퍽 리드미컬하게 넣고 계셨다. 난 그 앞으로 다가가 아줌마에게 붕어빵을 주문했다.
"붕어빵 3개요" 떨렸다. 과연 얼마라고 할까.
"천원" 퉁명스럽게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분명 천원이었다. 3마리에 천원. 그것은 일단 진짜였다. 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근데요. 한마리에는 300원인데 왜 3마리는 천원이에요?" 라고 묻자 앙금을 넣던 아줌마의 숟가락 질이 멈춰지고 나를 밑에서 위로 훑어보면서 아주 한심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3마리 싸가면 종이값 들잖아! 거기다 난 3마리 담아줘야하고. 그럼 그만큼 노동력들고!"
그랬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종이봉투는 비쌌다. 나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공부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신성한 노동력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다. 그렇네. 한마리 먹을땐 비치되어있는 종이 한장으로 셀프로 집어먹으면 되는데 3마리를 시키면 아주머니의 노동력을 사용하게 되니까 그 만큼의 돈을 더 지불해야하는 구나. 정말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두마리만 먹을께요"
하고 두마리를 손으로 집고 600원을 주고 왔다. 그 때 아줌마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뭐 이런 병신이...라는 눈빛.
규모의 경제는 어찌보면 아주 쉬운 경제학 원리이다. 노동력의 댓가는 돈으로 지불하게 하는 것이 맞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서비스로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아줌마는 4마리에 1천원으로 붕어빵을 팔았다면 훨씬 더 좋은 이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암튼 그 의문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그 붕어빵 가게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사라지게 되었다. 버스의 배차가 짧아져 줄이 길지 않게 되었고 학교버스가 투입되면서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혹 들리는 소문으로는 시장 골목 안쪽에서 또 붕어빵을 팔고 있단 말을 들을 적은 있지만 정확히 그 분인지는 확인되지않았다.
오늘 저녁으로 순두부찌개가 먹고 싶어 재료를 사러 나갔는데 홈플이 일욜이라 문을 닫아 동네 순두부 가게에서 포장을 해가기로 했다. 식당에서 혼밥을 해본적이 없어 포장주문을 했는데 밥먹는 사람들을 보니 순두부찌개에 테이블마다 올려져있는 날계란을 마구 넣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식탁마다 올려져있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구이, 그것도 국내산 고등어. 해물순두부에 계란이 무제한 가능. 거기다 고등어구이가 메인 반찬인 순두부찌개의 가격이 7천원. 완전 혜자인 이 순두부의 포장을 난 서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윽고 아주머니께서 검정색 비닐봉투에 담긴 플라스틱 국그릇에 담긴 내 순두부를 주셨다. 그런데 계란도, 고등어도 없었다. 심지어 집에 가서 끓여서 먹으란다. 데펴먹는 것도 아니고 끓여먹으라니.. 가격은 똑같이 7천원. 갑자기 혜자가 창렬로 성전환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내가 여기서 먹지않고 집에서 먹으면 설거지거리도 없어져, 반찬도 안나가, 자리 차지도 안하니 손님도 더받을 수 있지, 물을 마시나 고등어가 나가나 계란이 나가나. 심지어 가스도 안쓰고 후식으로 나오는 매실차도 안마셨구만 가격은 똑같이 7천원이라니. 근데 이 가게는 망할 수는 없을 거다. 와서 먹는 사람들은 이 만큼 만족감을 크게 느낄테니까. 나도 여기서 먹은 적이 있는데 맛있게 먹었었으니까. 그래서 또 온거니까.
검은 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 10여년전 그 붕어빵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아줌마는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붕어빵을 팔고 계실까. 기적의 경제학자여..
암튼 순두부는 나름 맛있었다.
-끝-